마음이 시작하는 순간, rendez-vous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마음은 어느 한순간 우연처럼 시작하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타래가 건드려진 결과다. 실타래를 더듬으며 마음은 풀렸다가, 다시 얽히고 또 풀렸다가, 다시 얽힌다. 심지어 끊어진다. 잠시 주춤하기는 해도 마음은 다시 이어지길 시도한다. 결국 실타래는 우리를 하나의 지점으로 이끈다. rendez-vous는 마음의 움직임과 존재의 경험을 설명하는,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다.
마음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rendez-vous는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향한 의지의 표현이며, 타자와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그 안에는 기대와 설렘, 불안과 망설임, 확신과 회의가 뒤섞여 있다. 이 ‘만남의 감정’은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한 소속감, 애착, 인정 욕구 등과 연결된다. 누군가와 rendez-vous 한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으로 만나는 것을 넘어, 감정의 시간을 공유하고 관계의 리듬을 맞춘다는 뜻이다.
심리적으로 rendez-vous는 시간과 공간을 구조화하며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만든다. 그 약속을 중심으로 우리는 하루를 준비하고, 그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미래 지향적으로 재구성된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Dasein)”처럼, 인간은 미래를 향해 존재하는 존재(Sein und Zeit, 1927)이며, rendez-vous는 바로 그 미래의 한 점을 현재로 끌어당긴다.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존재의 방향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적 사건인 것이다.
행복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그렇다면 그 만남에서 비롯되는 감정, 곧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흔히 마음은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이 큰 실수라는 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는다. 행복을 주려고 노력했던 마음들, 시간들, 비용들이 어느 순간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배신감을 느낀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왜. 뒤집어 보면 답이 있다. 행복은 누군가 준다고 생기는 게 아닌 까닭이다.
진정한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마음 속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존재다. 마음이 만나는 순간, 마음의 진동에서 행복은 시작한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감사하고, 그와 함께하는 순간에 충실할 때 비로소 행복은 저절로 피어난다. 행복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 내면으로 스며드는 정서다.
만남이 반복되면서 관계는 깊어지고, 신뢰는 쌓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rendez-vous 하자는 것은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너를 보고 싶다”는 감정의 선언이자, “너와의 시간에 나의 존재를 걸겠다”는 고백이다.
우리는 존재했고, 행복했으므로
행복을 억지로 만들 수 없듯, 진정한 만남 또한 인위적으로 구성될 수 없다. 의미 있는 rendez-vous는 자발적 의지의 표현이며, 그 안에는 존중과 기다림, 불확실성을 감수할 준비가 포함되어 있다. 이 만남은 곧 행동의 철학이고, 존재의 윤리이며, 삶의 감정이다. 그것은 인간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동시에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증명한다.
결국, 마음은 ‘rendez-vous’라는 이름으로 시작된다. 그 만남은 미래의 가능성을 품은 현재의 사건이며, 상대와 함께 존재함으로써 내 삶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 약속을 기대하고, 기다리며, 그 자리로 걸어간다.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했고 그래서 행복했으므로.
PS> 웃기지만, 이 글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랑데부'의 후기다. 공연 기간은 2025-04-05(토) ~ 2025-05-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