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 시대: 비번은 나도 모르는 게 최선

비밀번호 수십, 수백 개를 기억하는 시대는 끝났다. 비밀번호 하나 가지고 여기저기 쓰는 시대는 더 끝났다. 암호 관리 앱 서비스로 비밀번호는 나도 모르는 시대로 가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시대: 비번은 나도 모르는 게 최선

온라인 비밀번호는 필수품이다. 아주 옛날에, 가입해야 하는 서비스가 몇 개 없던 시절에는 비밀번호를 다 외웠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이메일, 소셜미디어, 금융서비스, 쇼핑몰 등 수십 수백 개의 계정이 필요한 요즘 이걸 다 외울 수 있는 사람은 아인슈타인에 버금 가는 천재일지 모른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기억력이 좋다는 근거는 어디서 들어보질 못했다. 그냥 넘겨 집었다).

비밀번호는 단순한 문자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디지털 세계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수단이자, 개인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열쇠다. 철학적 관점에서 비밀번호는 '기억'과 '책임'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용자가 비밀번호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정보에 대한 소유권과 책임을 인정하는 행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용자가 비밀번호를 직접 기억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보안의 취약점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비밀번호는 같은 걸 쓴다. 대신 하나를 아주 정성들여 만든다. 아이폰 비밀번호를 스물 몇 자리로 만들었다는 사람 만큼은 못해도 특수 문자 넣어서 나름 복잡하게 만들어 쓴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인가. 한 곳에서 털리면 그냥 끝이지. 게다가 요즘은 개인정보 유출의 대홍수 시대. 여기서, 저기서 개인정보 털렸다고들 한다. 이제는 아주 포기 상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던진 이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나도 안다. 남들이 지켜주지 않는다고 해서 내 정보 지키기를 스스로 포기한다니.

그래서 나는 암호 관리 앱을 쓴다. 정확히 말하면 맥에서 제공하는 암호 앱을 쓴다. 암호 앱은 모든 비밀번호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금고와 같다. 대부분의 암호 앱들은 AES-256(Advanced Encryption Standard)과 같은 군사급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여 데이터를 보호한다. AES-256은 현재 알려진 모든 컴퓨팅 파워를 동원해도 해독하는 데 수십억 년이 걸릴 정도로 강력한 암호화 방식이다. (설마?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쓴다)

비밀 번호 전략 : 기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보안

암호 관리 앱을 쓰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비밀번호를 나도 몰라야 한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암호 관리 앱이 만들어주는 대로 비밀번호를 쓰라는 것이다. 굳이 내가 기억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거 복잡하게 해 놓고 로그인할 때 암호 관리 앱이 알아서 실행되게 하면 된다.

이 전략의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각 계정마다 고유한 비밀번호를 사용함으로써 한 서비스가 해킹당해도 다른 계정은 안전하게 보호된다. 둘째, 인간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비밀번호(예: "p7X#9qR2@tL5*vZ")를 사용할 수 있어 해킹들도 골머리를 앓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비밀번호를 메모장이나 스마트폰 메모 앱에 저장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관행이다. 물리적 메모는 분실되거나 타인에게 노출될 수 있으며 암호화되지 않은 디지털 메모는 기기가 해킹당하면 즉시 노출된다. 암호 관리 앱은 이러한 위험 없이 비밀번호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암호 관리 앱에서 마스터 패스워드를 설정한 후에는 2단계 인증(2FA)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 시간 기반 일회용 비밀번호(TOTP) 방식의 2FA는 마스터 패스워드가 노출되더라도 추가적인 보안 계층을 제공한다. 나는 마이크로소프트 Authenticator를 쓴다.

당신에게 맞는 암호 관리 앱 찾기

시장에는 다양한 암호 관리 앱이 존재하며, 각각 고유한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앱으로는 1Password, Bitwarden, LastPass가 있다.

  1. 1Password: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와 강력한 보안 기능을 갖춘 프리미엄 서비스다. 가족 공유 기능이 뛰어나며, 모든 주요 플랫폼을 지원한다. 다만 무료 버전이 없고 구독 모델로만 제공된다.
  2. Bitwarden: 오픈 소스 기반의 암호관리앱으로, 투명한 보안 정책과 경제적인 가격이 장점이다. 무료 버전도 대부분의 핵심 기능을 제공하며, 프리미엄 버전은 추가 기능(예: TOTP 생성기)을 제공한다.
  3. LastPass: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다양한 플랫폼 지원이 특징이다. 무료 버전과 프리미엄 버전을 제공하지만, 최근 보안 사고로 인해 일부 사용자들의 신뢰가 하락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모르는 비밀번호 혁명

디지털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개인정보 유출 대홍수의 시대에 살면서 똑같은 비밀번호를 여러 사이트에 쓰는 것은 마치 집 열쇠를 현관문 앞에 두는 것과 다름없다.

암호 관리 앱을 활용한 "비밀번호 모르기" 전략은 보안과 편의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최적의 해결책이다. 각 계정마다 복잡하고 고유한 비밀번호를 사용하되, 그것을 기억하는 부담은 앱에 맡기는 것이다. 우습게도 내 비밀번호는 나도 모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역설적이게도, 모르는 것이 약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