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드로 히메네즈와 시작한 어느 날 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첫 잔 부터 단 술이라니.
하지만 이상하게 단 게 당겼다.
그래서 선택한 건 엘 칸다도 페드로 히메네즈.
아마도 이걸 선택한 순간부터,
오늘은 그냥 단순한 밤이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한 모금.
건포도다.
그냥 향이 아니라,
진짜 건포도를 씹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질감은 시럽보다도 더 느리게,
혀 위를 기어가듯 천천히 흐른다.
설탕과 알코올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처럼 합쳐진 느낌.
달고 묵직하고, 그리고… 저릿하다.
오래 머금어야만 느끼는 그 저릿함.
나는 그걸 좋아했다.

안주는 크래커와 올리브,
그린 올리브가 의외로 잘 어울렸다.
너무 짜지 않은 게 오히려 좋았다.
단맛에 허우적대던 혀가
짠맛 한 점에 정신을 딱 차린다.
그 짠맛은 경고가 아니라
구원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크래커 위에 올린 크림치즈는 뜻밖이었다.
첫맛은 부드럽고,
뒤이어 단맛과 어우러지며
입 안에서 무언가가 정리되는 느낌.
크래커가 다시 등장해
그 단맛을 걷어내 준다.
한 번의 감각, 하나의 구조,
그리고 다시 빈 잔.

중간에 등장한 블랙 올리브.
그린과는 또 다르다.
짠맛은 덜하고 아삭하고 쫄깃하다.
입 안에 오래 머물다 보면,
그 자체로도 하나의 이야기다.
PX의 어두운 단맛과 블랙 올리브의 고요한 쌉싸름함이
서로를 더 깊게 만든다.

감각의 역류. 나는 디저트 와인을 첫 잔으로 주문했고
거꾸로 드라이한 셰리를 마시려 한다.
아마도 이 경험은 실패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은 아직 다 나오지 않았고,
감각은 아직 다 깨어나지 않았고,
술은 아직 다 마시지 않았고,
밤도 아직 다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잔을 들었다.
밤은 더 깊어지고 있었고,
나는 단맛의 깊이에서
방향을 잃고 헤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