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 카르텔: 기자가 기자를 심사하는 나라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실 현장을 공개하자는 제안을 했고, 기자들은 반발했다. 기자들은 왜 반발했을까? 기자단이라는 자체가 특혜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채널이 비법조기자단 가입을 거절당하고, 서울고법이 뉴스타파·셜록의 항소심에서 기자단 폐쇄성을 인정하는 등 기자단 카르텔의 구조적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났다.

기자단 카르텔: 기자가 기자를 심사하는 나라

2025년 2월, 63만 구독자를 보유한 정치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이 비법조기자단 가입을 신청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가 운영하는 이 채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리를 취재하기 위해 법조 자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29개 매체가 참여한 투표에서 반대 23표, 찬성 2표로 가입이 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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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 이유는 "유튜버 난립 우려", "기자단 자체가 와해될 우려",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기자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법조기자단'은 기존 법조기자단의 폐쇄성에 반발해 2016년 만들어진 단체였다. 그런데 이들 역시 자신들이 비판했던 바로 그 논리로 새로운 매체를 배척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2025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출입기자단 가입 과정의 실상이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기자들이 다른 기자들의 심사를 받아야만 취재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기이한 시스템. 이는 단순한 관행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다.

법원도 인정한 기자단 카르텔

2024년 6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은 뉴스타파와 셜록이 서울고등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출입증 발급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심에서 승소했던 이들이 항소심에서 뒤집힌 것이다.

서울고검은 법정에서 "원고들이 소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이익이 기자실 사용 및 상시출입증 발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과 법조기자단의 견고한 카르텔'이라는 그 실체가 불분명한 것을 소송으로 다투기 위함"이라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검찰 스스로 '기자단 카르텔'의 존재를 인정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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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와 셜록은 "법조출입기자단에 속한 언론사 또는 그 소속 기자들이 출입증을 발급받는 것이 그 자체로써 특혜"라며 "출입증을 발급받은 것만으로도 보도의 자유 및 정보원에 대하여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에 차이가 발생한다"고 반박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탄핵 재판장에서도 벌어진 차별

2025년 1월부터 3월까지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도 기자단 카르텔의 민낯이 드러났다. 법조기자단은 헌법재판소에 소속사 기자만 앉을 수 있는 '좌석지정제'를 만들었다. 법조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기자는 법정에 자리가 비어도 앉을 수 없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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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법조기자단 밖 언론사가 '좌석지정제' 철회를 요구하자, 법조기자단 간사는 "기자라고 주장하는 극우 유튜버들로 인해 윤석열 탄핵 심판 날마다 극도의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헌재 취재를 오래 해온 법조출입기자단에게 '기자실 기자석' 개념의 좌석지정제가 실시되는 것"이라고 거절했다.

결국 미디어오늘과 셜록은 2025년 1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뉴스어디, 일요시사 등이 피해자로 이름을 올렸다.

2022년 서울시청 기자단 추가 모집 현장

이런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오래됐다. 2022년 5월 16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서울시 출입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9개 매체의 '비출입' 기자들이 기자단 소속 기자들 앞에서 3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마치 취업 면접장을 연상시키는 이 풍경에서, 기자들은 자신의 매체가 서울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 어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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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가 끝나면 출입기자들의 투표가 시작된다. 1출입매체당 1표씩 익명 투표로 과반 이상의 표를 받으면 출입사로 등록되고, 그렇지 못하면 6개월 후 다시 도전해야 한다. 이날 36개 투표사 중 23표를 얻은 JTBC와 더팩트가 합류했다.

기준 없는 심사, 인맥이 좌우하는 결과

문제는 선정 기준이 전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 비출입사 기자는 "기준을 아무도 모른다. 여성 기자들이 발표하는 곳만 승인한 경우도 있었고, 메이저 매체만 승인한 경우도 있다. 인터넷 매체에만 반대표를 던진 곳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출입사 기자들도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 한 출입사 기자는 "내부에서 어떤 매체를 뽑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거나 논의되는 부분이 없었다. 투표날 아침 우리끼리 카톡으로 간단히 이야기한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PT를 진행하고 투표 절차까지 밟았지만 서울시 출입기자단에 들어가지 못한 경험이 있는 한 기자는 "보통 국장 등 윗사람들이 '우리 회사 도전한다'고 기존 출입기자들한테 연락하면 표를 주는 식"이라고 폭로했다.

굴욕적인 경쟁과 차별의 현실

출입기자단에 들어가기 위한 기자들의 경쟁은 과열된 상황이다. 공식적으로는 '매체별로 3분씩 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만 되어 있지만, 기자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PT 발표, 간식 제공, 기자실 인사 돌리기, 홍보물 제작 등이 당연시되고 있다. 한 출입사 기자는 "이번 투표 전에도 한 분 한 분 기자실을 돌아다니면서 인사하시고 문자도 보내고 선물도 돌렸다"고 말했다.

출입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비출입사 기자들은 취재에 일정한 제약을 받는다. 출입사 기자들은 기자실에 개인 책상이 있고 출입이 자유로운 반면, 비출입사 기자들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만 출입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보 접근의 차별이다. 출입사에는 보도자료를 먼저 제공해주며, 시장 간담회 등도 출입기자단만 참석할 수 있다.

1920년대에서 멈춘 시계

이런 기묘한 시스템은 어디서 왔을까? 그 뿌리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이 조선의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기자클럽' 제도가 바로 오늘날 출입기자단의 원형이다.

일제는 각 관청에 기자클럽을 설치하고, 특정 신문사 기자들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하고, 언론을 길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활용했다. 해방 후에도 이 제도는 청산되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대에는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더욱 공고화됐다.

놀랍게도 민주화 이후 30년이 넘은 2025년에도 이 시스템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이 일어나고 1인 미디어가 등장하는 시대에도, 한국의 출입기자단은 여전히 1920년대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언론이 언론을 가두는 역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언론의 자유를 가장 크게 제약하는 것이 바로 언론 자신이라는 점이다. 정부나 권력기관이 아니라, 같은 기자들이 다른 기자들의 취재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언론의 기본 원칙인 다양성과 경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사례는 이런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기존 법조기자단의 폐쇄성에 반발해 만들어진 '비법조기자단'이 정작 새로운 매체에 대해서는 똑같은 배타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장윤선 기자는 "1기자단과 다름없는 2기자단을 만든다면 2기자단은 왜 만들어진 건지, 그러면 또 나머지 매체끼리 3기자단을 만들어서 1군 2군 3군 체제로 운영이 되는 것인지, 그게 과연 대한민국 언론의 건강한 모습인 건지에 대해서는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시스템

이런 시스템은 국제적으로 매우 특이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정부 기관이 모든 언론사에 평등하게 정보를 제공한다. 독일은 아예 기자실이 없고, 연방기자회견협회가 주도하는 완전 개방형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 백악관도 상대적으로 개방적이며, 영국 총리실도 투명한 정보 제공을 원칙으로 한다.

한국과 비슷한 기자클럽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조차 국제적 비판을 받으며 개혁 압력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100년 전 일제의 유산을 고수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이 61위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런 구조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언론의 자유는 정부의 탄압만으로 제약받는 것이 아니다. 언론 내부의 카르텔과 기득권 구조도 마찬가지로 심각한 위협이다.

변화의 바람은 언제 불까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기자실을 폐지하겠다"고 선언하며 개방형 브리핑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언론계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좌절됐다.

그로부터 20년이 넘은 지금,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매체가 등장했지만, 출입기자단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 기존 기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욱 견고하게 지키려 하고, 새로운 매체들은 더욱 굴욕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2025년 현재에도 이런 기묘한 광경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자가 기자를 심사하고, 언론이 언론을 가두는 이 시대착오적 시스템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출입기자단 카르텔은 단순한 관행이 아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다. 100년 전 일제의 유산을 청산하고, 진정한 언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 개혁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