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성(das Schloß)과 내란 이후 한국 정치의 불투명성

프란츠 카프카의 『성』은 백 년 전 쓰였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와 권력 구조를 꿰뚫는 통찰로 다시 읽힌다. 닫힌 문, 해명 없는 절차, 설명하지 않는 권위… 우리는 아직도 그 성 앞에 서 있다.

카프카의 성(das Schloß)과 내란 이후 한국 정치의 불투명성

성은 언제나 멀고, 문은 닫혀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Das Schloß)’은 단지 소설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본질적인 문제를 꿰뚫은 강력한 통찰을 담은 고전이다.

주인공 K는 어느 날 이름도 성격도 모호한 ‘성’에 도착한다. 그는 자신이 고용된 측량사라고 주장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성의 관료들은 이를 확인해주지 않는다. K는 성에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문턱은 높고, 절차는 애매하며, 모든 것은 불투명하다.

이 소설은 단지 한 인간의 부조리한 좌절의 이야기일까? 내란으로 헝크러진 한국 현대 정치와 사회 구조에 대한 냉철한 예언이 아닐까.

권위의 이름으로 작동하는 체제

카프카의 성은 권력의 본질을 상징한다. 그 안에는 분명히 백작이라는 절대 권위가 존재하지만, 그는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지시와 결정은 관료라는 중개자를 통해 전달되며, 명확한 기준 없이 해석되고 집행된다. 이 권위의 구조는 실체가 없는 듯하면서도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이는 한국 정치의 관료제 구조와 닮아 있다(물론 이 구조를 극단적으로 강화시킨 건, 내란수괴 혐의로 기소된 자의 정권이었다). 시민이 직접 접촉할 수 없는 권력. 다단계의 행정절차,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결론들. 정작 누구의 지시에 따라 어떤 판단이 내려졌는지는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공정, 상식, 절차, 합리성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결정들이 밀실 속에서 이루어졌다.

K는 누구인가 – 민중의 은유

작품의 주인공 K는 단지 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권력에 접근하고자 하는 모든 평범한 이들의 초상이다. 자신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수한 설명과 변명을 반복하지만, 체제는 응답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체제에 순응하며, 성의 존재를 당연시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제도와 시스템에 접근하려는 소외된 시민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공공기관, 대기업, 정치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은 종종 닫힌 문 앞에서 좌절됐다.

투명하지 않은 체제가 낳는 불신

성의 불투명함은 단지 구조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의 위기이자, 정치적 무력감의 근원이다. 성에서 K는 끝내 진실에 다다르지 못하고, 성의 실체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명확한 이유 없이 배제되고, 끊임없이 해명해야 하는 구조. 이것은 현대 시민이 행정부, 사법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대할 때 느끼는 불신과 다르지 않다.

내란수괴 정권이 등장한 이후 권력층의 의사결정이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며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한 사건들이 있었다. 눈에 드러나게 편파적인 검찰,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 쓰는 언론, 법이 인정했는데도 정보 공개를 거부하는 행정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리는 판사, 대왜(Japan) 굴종 외교 등은 카프카적 구조의 반복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불투명한 권위주의의 그림자 아래 있다.

카프카는 미래를 경고했다

카프카는 체제의 문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어떻게 그런 구조에 익숙해지고, 무력함에 길들여지는지를 보여준다. 성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여전히 불투명한 권력 앞에 무력한가? 왜 참여를 말하면서, 참여할 수 없는 구조를 용인하는가?

이 작품은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불안과 침묵, 그리고 좌절의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소설이 아닌, 정치적 성찰의 거울이 된다.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성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권력은 본질적으로 위계적이고, 시민은 언제나 구조 밖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때 필요한 것은 열려 있는 시스템, 이해할 수 있는 절차, 책임지는 리더십이다. 정치와 행정, 그리고 기업 경영 전반에서 투명성과 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민이 권력의 문 앞에서 계속 자격을 증명하지 않도록, 시스템은 설명할 의무가 있다. 누구도 K처럼 끝없는 대기 속에서 침묵하는 성 앞에 서 있어선 안 된다. 시민이 납득할 수 없는 행정, 사법, 입법의 행위들을 이제는 설명해야 한다. 시민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연대해서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하지 않는 자들을 파면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카프카는 백 년 전, 오늘의 민주주의가 반드시 직면해야 할 과제를 미리 그려냈다. 성은 이제 더 이상 소설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자, 우리가 응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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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 Awes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