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 vs 구글 시트: AI를 둘러싼 셀 단위 전쟁
엑셀과 구글 시트의 경쟁은 이제 기능을 넘어선다. AI 통합 이후 두 도구의 경쟁은 철학적, 심리적 차원을 반영하며 확장되고 있다. 각 플랫폼의 전략과 이용자의 수용 태도를 통해 AI 스프레드시트의 본질을 해부한다.

스프레드시트는 왜 다시 전장이 되었는가
스프레드시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생성AI 툴이 스프레드시트 기능을 강화하면서 스프레드시트는 단순히 데이터 입력 도구를 넘어 **AI 통합을 매개로 한 플랫폼 전쟁의 최전선(까지는 아니겠지만…)**이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엑셀과 구글 시트의 대립 구도는 기능적 비교에서 철학적 충돌로 진화했다. 단순 계산을 넘어, ‘누가 더 똑똑하게 인간을 보조하는가’, 나아가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결정을 유도하는가’를 중심으로 경쟁의 본질이 재구성되고 있다.
AI 통합 이후의 첫 번째 격돌: ‘도구’에서 ‘동료’로
엑셀은 오랜 시간 전문가용 툴의 정점에 있었다. 전통적인 이용자들은 복잡한 수식, 피벗테이블, 매크로, VBA 등 고급 기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업무를 자동화해왔다. 그러나 이는 높은 진입장벽을 의미하기도 했다. 엑셀을 중간쯤은 써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피벗테이블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구조를 뒤흔든 것이 바로 AI Copilot이다. 이용자는 이제 자연어로 “지난달 재고 이상치를 요약해줘”라고 지시할 수 있고, AI는 알아서 표와 그래프, 요약 보고서를 작성한다. 스프레드시트의 복잡성을 AI가 해석해주는 것이다.
이에 맞서 구글 시트는 Duet AI를 탑재해 대응하고 있다. 웹 기반 환경을 활용해 실시간 협업에 최적화된 AI 기능을 제공하며, 회의 중 문맥을 감지해 주석을 달거나, 공동작업자의 수정을 AI가 예측하고 반영하는 기능까지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엑셀과 구글 시트는 ‘AI의 위치’를 두고 전략적으로 상이한 철학을 갖고 있다. 엑셀의 AI는 개별 전문가를 보조하는 비서의 역할에 가깝다. 반면 구글 시트의 AI는 집단의 협업을 조율하는 조력자로 설계되어 있다.
두 번째 축: 클라우드와 폐쇄성의 줄다리기
두 도구 간 결정적인 차이는 데이터 처리 구조에 있다.
구글 시트는 태생적으로 클라우드 기반이다. 이는 실시간 백업, 협업, 자동 저장 등의 장점 뿐 아니라, AI가 맥락을 학습하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구글은 이를 기반으로 이메일, 캘린더, 미팅 기록 등과 스프레드시트를 통합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반응한다.
반면 엑셀은 여전히 데스크탑-로컬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클라우드 버전(Excel for Web)도 제공되지만, 많은 고급 기능은 로컬 전용이다. 이는 보안·규제 측면에서는 장점이지만, AI 활용 면에서는 다소 불리한 환경을 초래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Copilot을 M365 전체 생태계에 걸쳐 확장 중이며, 아웃룩, 팀즈, 파워 BI와의 연계를 통해 통합적 AI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이용자 입장에서 개방성 대 통제성, 속도 대 정밀성의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
이용자는 누구인가: 심리적 수용의 분기점
두 플랫폼 간 경쟁의 결과는 기술력이 아니라 이용자의 심리적 수용 태도에 따라 갈릴 수 있다.
Duet AI는 작업 흐름을 자동 보완하며, 결과물 도출에 있어 이용자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이는 초보 이용자에게는 편리하지만, 숙련 이용자에게는 무력감과 불신을 유발할 수 있다.
Copilot 역시 분석 결과를 자동 생성하지만, 수식과 데이터 흐름을 추적하는 기능을 통해 ‘이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설명가능성’이 이용자의 통제감을 유지시켜주는 핵심 요인임을 시사한다.
이용자가 스프레드시트 안에서 ‘AI가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느끼는 순간, 도구는 협력자가 아닌 심판자로 느껴진다. 이 지점이 곧, 이용자의 신뢰 유지를 위한 UX 설계의 분기점이 된다.
법철학적 시선: 판단 주체의 이양 문제
AI가 스프레드시트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책임 소재의 문제가 대두된다. 예컨대, AI가 생성한 예측 보고서에 기반해 투자 판단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큰 손해가 발생했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전통적으로 스프레드시트는 ‘이용자의 입력에 의한 결과 도출 도구’였다. 그러나 AI는 입력된 데이터 이상의 문맥을 분석하고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더 이상 단순 도구로 간주하기 어렵다.
법철학적으로 이는 ‘규칙 해석자(rule-interpreter)’가 아닌 ‘규칙 생성자(rule-maker)’로의 이동이며, 판단 주체의 지위 변화라 볼 수 있다.
이는 하트(H.L.A. Hart)의 주장처럼, 시스템 내 규칙을 인정하는 메타규칙이 필요해지는 상황이다. 스프레드시트의 AI 함수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유도하므로, 인간은 ‘판단의 소유권’을 유지하려면 그 원리와 조건을 이해할 권리도 함께 갖춰야 한다.
결론: 셀 하나에 담긴 기술, 철학, 심리
엑셀과 구글 시트의 AI 전쟁은 기술적 우위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다층적 구도이다.
AI가 이용자와 협력하는 방식, 데이터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 그리고 그 판단에 대한 설명 책임은 모두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논의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는 이용자 개개인이 어떤 도구를 통해 얼마만큼의 통제감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Copilot이든 Duet AI든, 중요한 것은 셀 안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가가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질문하고, 누가 책임지는가이다.
스프레드시트의 경쟁은 이제 기능의 싸움이 아니라, 신뢰와 권한, 그리고 인간적 감각을 보존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선택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뭘 쓰느냐고? 업무용으로는 엑셀, 개인용으로는 구글 시트를 쓰고 있는데, 점점 구글 시트가 편해진다. 즉, 나는 고급 엑셀 이용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글쟁이가 엑셀을 뭐 얼마나 고급스럽게 쓸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