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과 배신: 최혁진 사건이 남긴 과제

최혁진이 기본소득당과의 복당 약속을 깨고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정치적 신뢰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에 대한 위기를 상징한다.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훼손하고 정치적 냉소주의를 확산시킬 위험이 있는 이 사건. 정치의 품격 회복과 약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최혁진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한다.

약속과 배신: 최혁진 사건이 남긴 과제
The Road a Traitor Takes by Midjourney

2025년 6월 4일, 한국 정치계에 또 하나의 논란이 불거졌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승계한 최혁진이 기본소득당과의 복당 약속을 파기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정당 이탈을 넘어 한국 정치의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신뢰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사건의 전말: 약속에서 배신까지

최혁진의 이야기는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본소득당은 개혁 세력과의 연대를 위해 당명을 ‘새진보연합’으로 바꾸고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였다. 최혁진은 이 과정에서 새진보연합의 추천을 받아 비례대표 16번 후보로 출마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최혁진이 기본소득당에 한 약속이다. 그는 당선될 경우 기본소득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하였다. 이는 단순한 구두 약속이 아니라, 정치적 신뢰 관계의 핵심을 이루는 공식적 합의였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최혁진에게 실망스러웠다. 더불어민주연합은 14번까지 당선되어 16번이었던 그는 낙선했다. 그러나 혹시 모를 비례대표 승계를 위해 최혁진은 더불어민주연합에 남았고, 더불어민주연합이 민주당에 흡수 합병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당 소속이 됐다.

그리고 2025년 6월 4일, 국민이 만들어 낸 기회가 찾아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위성락 의원을 국가안보실장으로, 강유정 의원을 대통령실 대변인으로 임명하면서 비례대표 의석 2석이 공석이 되었다. 순번에 따라 15번 손솔과 16번 최혁진이 국회의원직을 승계하게 된 것이다. 이 순간, 최혁진은 기본소득당과의 약속을 저버렸다. 그는 복당을 거부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약속의 무게와 신뢰의 가치

정치학자들은 민주주의의 핵심을 ‘신뢰’라고 말한다. 유권자와 정치인 간의 신뢰, 정치인과 정당 간의 신뢰, 그리고 정당과 정당 간의 신뢰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최혁진의 행위는 이 모든 신뢰 관계를 한 번에 파괴했다. 그는 기본소득당의 신뢰를 배신했고, 기본소득당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저버렸으며, 정치적 약속이라는 제도 자체의 신뢰성을 훼손했다.

윤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최혁진의 행위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 사례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도덕적 고민이나 갈등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가 그를 “정치적 사기꾼”이라고 규정한 것은 감정적 표현이 아니라 정확한 윤리적 진단이다. 사기란 상대방을 속여 이익을 취하는 행위인데, 최혁진의 행동이 정확히 이에 해당한다.

정치 불신의 악순환

최혁진 사건이 한국 사회에 미칠 파급효과는 개인의 일탈을 훨씬 넘어선다.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른 정치 불신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리서치가 2024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0% 이상이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인데도 최혁진과 같은 사례가 반복될 경우, 정치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 수치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2030세대가 이런 사건을 목격하면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체념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치명적인 위협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정치적 냉소주의’라고 부른다. 정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시민들은 정치 참여를 기피하게 되고, 이는 민주주의의 공동화로 이어진다.

비례대표제의 취지 훼손

최혁진 사건은 비례대표제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도 제기한다. 비례대표제는 다양한 정치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여 정치적 다원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런데 최혁진의 행위는 이 제도의 근본 취지를 왜곡시켰다. 기본소득당의 가치를 대변해야 할 자리를 사사로운 욕심으로 차지해 버린 것이다.

이 자, 최혁진은 소수 정당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겼다. 그동안 이재명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선거운동에 동참했던 기본소득당 대표와 당원들을 모욕한 것이다. 그러니 이 상처가 쉽게 아물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이제 당사자들의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민주당은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장 민주당에 한 표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조국혁신당과 기본소득당이 얼마나 이재명 대표를 위해 뛰었는지 본인들도 잘 알지 않는가. 더불어민주당은 최혁진에 대한 제명 조치를 통해 정당 정치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최혁진 본인도 스스로 물러나거나 최소한 기본소득당으로 복당하는 것이 도리이다. 법적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문화 차원에서는 이렇게 쉽게 배신하는 것을 용인한다면 소수 정당을 배신하는 정치인들이 또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하긴, 뭐 항상 있었지만).

정치에는 품격이 필요하다

최혁진 사건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약속도 저버릴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 정치문화, 이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의 부재, 그리고 이런 행위에 대한 사회적 관용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정치는 우리 모두의 삶과 직결된다. 그래서 정치는 더 품격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의 품격을 되찾는 길은 멀고 험하다. 최혁진 문제를 일개 블로거가 언급하는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 시대에 정치의 품격이 높아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에 제2의 조정훈은 필요 없다.